420 20주년을 기념하여 피델체님이 그려주셨습니다.
2002년 420 투쟁
2001년, 장애인도 함께 이동하고 싶다며 버스를 막고 지하철 선로를 막으며 투쟁하던 이동권 투쟁의 기치를 이어 받아 2002년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 결성되었습니다.
단 하루 4월 20일, 장애인의날만 마치 장애인을 생각하는 것처럼 동정과 시혜를 베풀고 다시 나머지 364일은 예전처럼 장애인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기존 사회를 철폐하고 1년 365일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해 4월 20일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외쳐 부르던 첫번째 해입니다.
장애인의 노동권.이동권.교육권.시설비리척결,장애여성.복지(빈곤,실업장애인의 최저생계 보장). 참정권 등 7개 영역에서 장애인도 이 사회에 함께 하기 위한 요구를 정식으로 만들어서 외쳤습니다.
그저 비장애인이 동정해 줘야 하는 "착한 장애인"을 거부하고 스스로 투쟁을 통해 권리를 쟁취하는 "나쁜 장애인"의 첫 420 투쟁이기도 합니다.
"한 번 장애인의 날 됐다고 잔치해주는 그런 부끄러운 나라에서 우리는 나쁜 장애인이 됩시다. 우리의 권리를 확실하게 찾아가는 나쁜 장애인! 나중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의 힘으로! 그것을 만들어냈으면 좋겠습니다."
(2002년 420 투쟁 결의대회에서 박경석)
2003년 420 투쟁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당시 한국 대중 운동의 주된 이슈였던 반전운동의 내용을 장애인운동 역시 주체적으로 받아 안으려는 의지와 실천을 담았습니다.
최옥란 열사 1주기인 3월 26일 '420 장애인차별철폐투쟁선포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1달여간에 걸친 420투쟁을 진행했습니다.
서울만이 아닌 경남과 부산, 광주 지역에서도 ‘장애인차별철폐 공동실천단’ 결성되었으며 이는 전국적인 규모의 투쟁이 이루어졌다는 뜻이며 이후 상시적인 지역 연대체로 까지 발전하였던 한 해였습니다.
2004년 420 투쟁
2004년 420 공투단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한 달간에 걸친 노숙 농성이 함께 했습니다. 420 투쟁기간 중 ‘빈곤문제해결을 위한 사회연대’ 출범식(3/30)과 ‘서울시장애인콜택시올바른운영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출범식(4/12)이 진행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공투단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장애인 노동권"."장애인 이동권" "장애인 교육권" "장애인 연금법 제정"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장애인 기초생활권" "장애여성" "장애인 정보접근권""장애인 문화권" "미신고시설 인권확보" "장애인 편의시설" "장애인 체육활동 보장" 을 요구하며 투쟁했습니다.
2004년 420 투쟁기간 중엔 서울역 앞 육교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육교에 우리의 요구가 담긴 현수막과 휠체어를 걸고, 장애인운동 활동가들은 사다리를 목에 걸며 투쟁했습니다. 이 잠깐의 도로 점거로 비장애 중심의 사회는 멈췄고, 그것에 화를 내는 비장애인 시민도 있었지만 우리는 이렇게 세상을 멈춰야만 들리는 목소리를 외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장애인만 타지 못하는 이 버스를 2013년에도 10년이나 더 10%만 타는 것을
이 날, 장애인의 날에 발표하는 정부에 대해서 우리가 이 차도를 비켜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2004년 서울역 앞 육교 점거 투쟁 중 박경석)
2005년 420 투쟁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기리며 전국노동자대회가 치러지듯이, 최옥란 열사의 기일인 3월 26일에 맞춰 ‘장애해방열사정신계승, 2005장애인차별투쟁선포 제1회 전국장애인대회’를 전국에서 모인 장애인운동의 주체들이 개최하게 된 첫 해입니다.
2005년 3월 24일부터 ‘대한민국에 장애인 인권은 없다’라는 구호 아래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하였으며, 4월 19일까지 농성을 지속하였습니다. 그리고 4월 20일 공덕동 로터리에서 개최된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결의대회 때에는 집회 후 마포대교를 4시간여 동안 완전히 점거하고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이로 인해 95명의 인원이 연행되기도 하였습니다.
2006년 420 투쟁
2006년은 곳곳에서 농성 투쟁이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장애인교육권연대가 3월 13일부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의 활동보조인서비스제도화투쟁위원회가 3월 20일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약칭 장추련)이 3월 28일부터 각각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농성에 돌입하였습니다.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대중 투쟁이 강도 높게 진행되어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특히 2006년 420 투쟁은 역사적인 한강대교 기어가기 투쟁이 있었던 해이기도 합니다.
당시 서울시장은 장애인 활동보조를 하기 위한 예산이 없다고 했지만, 정작 한강 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으로 한강대교 중간에 있는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기 위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에 장애인은 몇 시간을 한강대교를 기어갔던 것입니다.
한강대교 기어가기 투쟁, 단식 투쟁, 삭발 투쟁 등 장애인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서울에서 장애인 활동보조 제도가 마련되었고, 이는 전국적으로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가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7년 420 투쟁
2007년 420은 무려 세개의 농성투쟁과 함께 했습니다.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는 국회에 계류 중인 장애인의교육지원에관한법률의 4월 임시국회 통과를 위해 3월 26일부터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단식농성을 진행했습니다.
‘성람재단비리척결과사회복지사업법전면개정을 위한 공동투쟁단’(약칭 사복법개정공투단) 역시 공익이사제 도입(사회복지법인 이사 정수의 1/3이상을 운영위원회가 추천)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위해 같은 날부터 서울역 광장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했습니다.
‘활동보조인서비스제도화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단’(약칭 활보공투단)은 2007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활동보조인서비스의 권리성 확보를 위해 1월 24일부터 2월 15일까지 중증장애인 23인이 25일간의 단식농성을 진행하였고, 그 결과 보건복지부장관으로부터 연령과 소득기준에 의한 대상제한 폐지하고, 서비스 제공시간을 최대 180시간까지 확대한다는 약속을 공문으로 받아내었습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최종 사업 지침을 발표하였고, 활보공투단은 4월 11일부터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집 앞에서 공개 사과와 약속 이행을 촉구하며 다시 한 번 천막 농성을 진행하였습니다.
교육권, 탈시설, 활동지원... 이 세개의 기본적인 권리를 위해 420 공투단은 장대비를 뚫고 거리를 행진하며 목소리 외쳤습니다.
2008년 420 투쟁
2008년 420은 탈시설 투쟁을 활발하게 펼쳤던 주요 투쟁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석암비대위)’와 ‘성람재단 비리척결과 사회복지사업법 전면개정을 위한 공동투쟁단(성람공투단)’이 함께 결성한 ‘사회복지시설 비리척결과 탈시설권리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단(탈시설공투단)’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탈시설 권리의 보장을 위하여 3월 25일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50일간 천막농성을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농성의 과정에서 탈시설공투단은 서울시에 관할 시설 장애인에 대한 탈시설 욕구 조사와 구체적인 탈시설 정책을 수립할 것을 요구했고, 이에 서울시는 서울시정개발원에 위탁하여 38개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탈시설화 정책 및 주거환경 지원 학술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조사결과의 객관적 데이터에 근거하여 탈시설지원정책을 수립하기로 하였으나, 연구 결과조차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으며 면담 요구 또한 무시했습니다.
이후 탈시설공투단은 1년 후인 2009년 6월 4일, 탈시설-자립생활 권리 실현을 위한 3대 요구안(탈시설 5개년 계획 수립을 기본으로 ①탈시설전환국 설치 ②전환주거 제공 ③활동보조 생활시간 확대 및 대상제한 폐지)을 걸고 시설에서 나온 석암비대위 활동가 8명(마로니에 8인)과 함께 동숭동 마로니에공원에서 노숙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노숙농성 33일째 농성장소를 국가인권위원회 11층으로 옮겨 총 62일간의 농성을 전개하였고 이를 통해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 신설, 자립생활가정 제도 도입 등의 성과를 만들어 냅니다.
2009년 420 투쟁
2009년 420 공투단은 보건복지가족부 앞에서 탈시설-주거권 보장,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한 권리 보장, 활동보조서비스 권리 보장 등 3대 요구를 중심으로 노숙농성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장대비가 쏟아지던 4월 20일, 서울 동대문 앞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 5명이 도로에 뛰어들어 기습시위를 벌였던 해입니다. 차도 한가운데 사다리를 놓은 뒤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묶고 "장애인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경찰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약 3시간을 메서운 비와 날카로운 차별 사회의 시선을 넘어서며 장애인 차별 철폐를 외치던 활동가 중 2명이 결국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습니다.
"어제 이명박 대통령의 눈물 보셨습니까? 그건 악어의 눈물이었습니다. 장애인들이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주택과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만, 장애인을 시설에 가둬놓고서는 시설에 가서 '위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2010년 420 투쟁
2010년은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던 해였습니다. 420 공투단은 장애대중과 기층 민중의 요구를 관철하고, 이명박 정권의 민중생존권 탄압을 막아내기 위하여 사회적 연대를 강화한다”는 목표로 투쟁했습니다.
사회서비스 공공성 확보! 장애아동 복지지원체계 구축! 장애인자립생활 권리 전면 보장! MB정부의 민중생존권 탄압 분쇄! 를 이야기하며 420 공투단은 신문고 북을 두드리며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행진하며 목소리 외쳤습니다.
2011년 420 투쟁
2011년 420 공투단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420 투쟁에서 공식 의제로 제기한 첫 공투단입니다.
장애인 당사자의 여러 상황을 고려하고 무슨 지원과 서비스가 필요한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신체적 기준으로만 정한 장애 등급으로 제대로 된 생존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보편적 복지를 제도화하라는 요구를 본격적으로 하였습니다.
종로 보신각에서 "장애등급제 폐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을 외친 공투단은 종각역 안에 천막을 치고 농성 투쟁을 벌였습니다.
"장애인들은 장애인이 살 수 있는 날들을 만들어달라고 했지, 장애인을 하루 불러다가 도시락을 나누어주고 풍선을 달아주는 ‘장애인의 날’을 만들어달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마흔일곱 살이 될 때까지 누구도 나에게 학교에 가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처럼, 차별이 차별인지 모르면서 살면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는다.이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 악착같이 우리의 권리를 되찾자."
(420 결의대회, 박명애 대표의 발언 중)
2012년 420 투쟁
2012년 420 공투단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투쟁을 본격화하였습니다.
당시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에 조문하는 것으로 4월 20일 일정을 시작한 420 공투단은 종로 보신각에서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발달장애인 법 제정"을 촉구하는 420 투쟁 결의대회를 진행했습니다.
결의대회 후 보건복지부 앞으로 행진하면서 중증장애인활동가들은 휠체어에서 내려 한 시간가량 온몸으로 기어가면서,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삼고 장애 극복의 이데올로기만을 재생산하는 '장애인의 날'을 거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장애인의 절규는 들어주기는 커녕 보건복지부 앞 정리집회도 하지 못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이러한 투쟁의 의지는 2012년 내내 이어져서 2012년 8월 21일, 마침내 역사적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 지하농성이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3년 420 투쟁
2013년 420 공투단은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과 광화문 지하 농성이 반년이 넘어가는 시기에 진행되었습니다.
광화문에서 비를 맞으며 결의대회를 진행한 420 공투단은 종로 일대를 행진하고 광화문 광장에서 투쟁문화제 "차별철폐는 1년 365일"을 진행했습니다.
“전에는 비가 오면 어머니가 ‘비오니 나가지 말라’라고 했는데 오늘은 ‘비가 오니 따뜻하게 입고 나가라’라고 하셨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완고하시던 부모님들도 변하는데 시혜와 동정의 ‘장애인의 날’이 여전히 계속되는 것을 보면 사회와 정부는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장애등급제 폐지 요구에 대해 정부는 아직까지도 완전한 폐지는 시기상조라고 말하는데 우리의 몸에 등급을 매기는 것을 더는 참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바꾼 것처럼 장애인에게 등급을 매기는 정부에 강력히 항의해 장애등급제를 폐지하자”
(양영희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2014년 420 투쟁
2014년 420 공투단은 매우 커다란 슬픔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420 공투단 기간이었던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함께 해야 했고, 그 다음날 4월 17일은 장애등급제 때문에 제대로 된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하던 송국현 동지가 화재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420 공투단은 ‘장애등급제 희생자 故 송국현 동지 추모대회’와 함께 진행하였고, 이후 장기간 장례투쟁을 진행하였습니다.
추모대회 후 낮에는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장애인차별철폐 희망고속버스 타기" 행사를 진행하고 버스 타기를 진행하려 하였으나, 경찰은 장애인을 방패로 막고 무차별적으로 최루탄을 난사하는 폭력적 진압을 하였습니다. 이는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고, 이 때 경찰로부터 피해를 받은 33명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은 2018년 4월 18일 "시위 장애인 향해 최루액 분사는 위법이며 피해를 입은 원고에게 각각 100만원씩 총 33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탈시설 자립생활을 위해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쳤던 고인의 뜻을 기리며 이후로도 장애인운동은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이동권 보장을 외치며 계속 투쟁해 나갔습니다 .
2015년 420 투쟁
광화문 농성 3주년이 되는 해에 2015년 420 공투단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틀 내내 궂은 비가 내렸고 궂은 비 속에서도 투쟁의 의지를 이어나갔습니다.
2015년 420 모토 "장애인 권리를 끌어올려 보장!"의 기치에 따라 동대문 사거리에서 사다리를 메고 쇠사슬을 메며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치며 사회의 움직임을 멈추는 장애인의 투쟁을 펼쳐 나갔습니다.
이러한 투쟁은 2015년 내내 이어져서 85일간의 거리를 막는 그린라이트 투쟁으로 전국 곳곳에서 펼쳐 졌습니다.
장애인의 목소리를 유독 심하게 경찰이 막아섰던 2015년 이었습니다. 특히,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은 420 결의대회 참가자를 막는 경찰들에게 "오늘은 장애인의 생일 같은 날이니 차분히 대응하라."는 장애인 차별 발언을 수차례 반복하여 참가자들을 분노하게 했습니다.
21세기도 15년이 지났음에도 1년에 딱 하루 4월 20일만 동정과 시혜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을 폭력 경찰에게 받는 것에 분노하며 이후 인권위에 차별 진정을 냈습니다.
2016년 420 투쟁
나쁜 정치 폐기하고! 장애인권리 새로 고침!
2016년 420 투쟁은 총선이 맞물려 있었던 해였습니다. 그러나 사회에서 기성정당이 선거에서조차 제대로 얘기하지 않는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기 위해 가짜 정당 "폐지당"을 만들어서 선거 직전까지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를 이야기하며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326 결의대회를 한강을 건너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까지 행진을 하고 그 앞에서 1박을 하는 투쟁을 벌였고 4월 20일은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개막식과 함께 진행함과 동시에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까지 함께 행진하는 연대의 자리를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2017년 420 투쟁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향하여!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수용시설 폐지하라!
박근혜를 탄핵시킨 수백만의 광화문 촛불과 함께 2017년 420 공투단은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박근혜 탄핵 및 대선 정국 속에서 420공투단은 이미 광화문 촛불 때부터 외쳤던 장애인 3대 적폐 정책 폐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장애인수용시설 폐지를 내걸고 함께 투쟁을 했습니다.
거리에서 행진하면서 우리의 목소리와 요구를 스프레이로 적어 두고, 한창 문제가 되었던 대구시립희망원 시설 비리 및 인권 침해 문제와 관련해서 진상 규명 및 시설거주인 탈시설 요구를 외치며 광화문 촛불 현장에 추모 행사를 하고 명동성당에서 항의 행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4월 20일은 아침부터 함께 광화문에서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까지 행진을 하고 탈시설 요구를 담아 천막을 치려고 했으나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천막과 시설에서 무참히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조화는 박살이 나고 장애인은 또 다시 이 현실에 울분을 터트렸습니다.
420 공투단 이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화문 농성장에 정부 관계자 최초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방문하며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자기준, 장애인거주시설 폐지를 위한 민관 협의체를 만들기로 하면서 광화문 농성장은 2017년 9월 5일, 1842일의 농성 1막을 마쳤습니다.
2018년 420 투쟁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향하여!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년이 경과되고, 장애계 여러 현안에 대한 민관협의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한국의 장애인 예산은 OECD 평균의 4분의 1에 불과했고, 문재인 정부는 장애인복지예산 확대를 요구하는 장애계 요구엔 인색했습니다.
이에 따라 청와대 앞에서 농성투쟁을 하면서 2018년 420 투쟁의 막이 올랐습니다.
발달장애인 가족 209명이 발달장애인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삭발 투쟁을 하였고 이후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삼보일배 투쟁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77명의 지체·뇌병변장애인들이 휠체어에서 내려 오체투지 투쟁을 진행하며 3대적폐 폐지를 향한 장애인의 강한 절규와 요구를 장애인의 속도로 청와대로 다가가며 외쳤습니다.
“저는 기초생활수급자입니다. 수급을 받으면 정부로부터 얼마나 간섭을 많이 받고 감시당하는지 모릅니다. 왜 우리는 모두 기초수급만 받고 살아야 합니까. 일할 수 있는 장애인은 일하며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박명애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대표)
2019년 420 투쟁
2019년 420은 세종시와 서울시에서 투쟁을 했습니다. 3월 26일 420공투단 출범식은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 앞에서 진행하며 장애인 거주시설 폐쇄를 외치며 탈시설의 목소리를 외쳤고, 기획재정부에 제대로 된 장애인 생존권 예산을 외치며 도로와 담장에 우리의 목소리를 써 내려 나가기도 했습니다.
4월 20일은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유서를 낭독하고 입관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힘들고 장애인 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어야 하는 사회를 규탄하며 장애인거주시설 폐쇄 및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부양의무자기준 진짜 폐지를 함께 외치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직접 관에 들어가며 목소리 외쳤습니다.
2019년 420공투단에서 외친 목소리는 그대로 이어져서 2019년 7월 1일 장애등급제란 이름이 폐지된 때에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외치며 서울 서초의 조달청에서 잠수교를 넘어 서울역, 충정로 국민연금 앞까지 먼 거리를 행진하는 전동행진을 진행했고, 이후 당시 보건복지부 사회보장위원회가 있던 충정로 국민연금 앞에서 만 65세 이상 활동지원서비스 제한을 폐지할 것을 외치며 단식 및 농성 투쟁을 펼쳤으며, 기획재정부와 관련 있는 나라키움저동빌딩에 농성을 하며 장애인 권리예산 확충을 주장했습니다.
2020년 420 투쟁
#물리적 거리두기_코로나19, #사회적 연대강화_코러스20
코로나19란 전세계적인 재난이 시작된 해에 맞이한 420투쟁입니다. 420 공투단은 코로나 19 재난 속에서 장애인은 더 심각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정부가 취한 태도는 장애인거주시설 집단 감염시 코호트 격리와 같은 물리적 강제력으로 봉쇄하고, 긴급탈시설 추진이 아닌 수용시설을 오히려 강화하는 인권침해적 정책을 하고 있음을 규탄하며 이에 맞선 투쟁을 진행했습니다.
3월 26일엔 국회의사당에서 국민의힘 당사까지, 4월 20일엔 광화문에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까지 행진을 진행했습니다. 물리적 거리두기인 코로나19를 지양하고, 사회적 연대강화인 코러스 20을 외치며 끈으로 우리의 구호팻말를 붙여서 행진하는 사람들이 구호팻말에 맞춰서 행진을 하고 마스크에 우리의 구호를 붙여서 행진을 하였습니다. 동시에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이 적힌 대형현수막을 들고 행진했습니다.
저녁엔 장애해방열사추모제를 진행하며 떠나간 동지들이 바랐던 장애해방의 세상, 탈시설.노동권,빈곤철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2021년 420 투쟁
동정에서 권리로, 비장애중심 사회를 이동시키자!
2021년 420 공투단은 장애인 권리예산 그리고 탈시설과 권리보장법을 위해 또 다시 서울과 세종에서 활발하게 투쟁했던 해입니다.
2017년 광화문 농성장이 1막을 내린 이후 다시 3월 16일부터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 양대법안 제정을 위한 농성장이 마련되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약속했지만, 기획재정부의 예산 지침에 따른 조작된 '종합서비스 점수'에 맞추어진 ‘가짜폐지’에 머물렀고, 탈시설지원체계 구축을 국정과제로 이야기했지만 예산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에, 326과 420 일정 모두 세종정부청사를 중심으로 한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3월 26일은 오송역 B1버스를 막아서며 오송-세종-대전을 오가는 주요 광역버스인 B1에 장애인이 단 한대도 탈 수 없는 것을 규탄하였고 , 4월 20일은 세종 도담동 일대를 점거하며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면담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인 4월 21일 보건복지부 담장 위에 올라가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요구하는 긴급 행동을 진행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장애인은 지역 사회에서 함께 이동하고 노동하고 탈시설해서 살고 싶다는 장애인의 목소리는 계속되었습니다.